"나는 개인적인 작품을 만들지만 형식주의자는 아니다. 정신 속에 형식을 만들고 형식 속에 정신을 잃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배하는 사고의 나의 신앙이고 나의 확신이다. 나는 사회에 대하여 나의 이야기를 읊조린다. 이는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변화되어 가는 주변 과 대상들 가운데 묘사되어지는 마음속의 환상적 세계에 존재한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나의 주관적 해석이며 감상자에게 마치 상징을 넘어 서 의미론적 구조에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게임과 같이, 생활과 정신에 다양성과 풍부성을 준다.“
권정호씀
- 1965년 그는 계명대학교 미술공예학과에 입학하였다. 군대를 다녀온 뒤 그는 처음부터 추상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스승 정점식 교수와 당시 미술계에 파급된 남관의 영향으로 1970년대에 점과 문자로 이루어진 추상 작품을 주로 제작하였다. 특히 이때는 국내 전위미술 흐름이 시작되었고, 대구에서도 현대미술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미술의 근원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였다. 그의 작품에서는 조형의 원초로서 '점' 시리즈가 제작되었는데, 창호지 구멍 형태의 점을 그리거나 붙이는 식이었다. 후에 술회하기를 초기 점의 형식은 자신의 삶과 문화에서 영감 받았고, 서예 수련의 영향으로 동양에서의 점은 조형의 원리이자 시작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점 시리즈는 당대 한국 모노크롬의 환원적 조형과 닮아 있었지만, 1980년대 들어 그는 점에서 개념적 접근을 시도하였다. 1970년대 대구의 젊은 작가들은 현대미술운동의 영향으로 국제적 미술흐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권정호는 대구 미공보원에서 잡지와 서적으로 동시대 미술을 접했는데, 특히 재스퍼 존스에 관심을 가지고 번역서 ⌜재스퍼 존스⌟(막스 코즐로프 저, 1982, 흐름사)를 출간하기도 했다. 당시 단색화 미니멀리즘 물결 속에서 그 역시 점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었지만, 의미를 모른 채 외형을 따라하는 당대 미술에 회의를 느꼈다. 1981년(바보의 미장)은 흰색의 면벽처럼 보이는 화면에 보일 듯 말 듯 한 흰색 물감을 배치하였고, 이는 '바보의 미장'이라는 제목처럼 개념 인 근거가 부족한 채 극단의 환원적 조형과 물질감을 추구하던 당대 화단을 비꼬는 것이었다. 또한 이 작품의 제목은 재스퍼 존스의 (Fool’s House>(1962)와 유사한데, 허위를 통해 진실을 보여준다는 재스퍼 존스가 제시한 구조를 본받았다.
1970 - 1982
: 점, 문자 시리즈
- 그는 1982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PrattInsttute)에서 수학하였다. 유학 중이던 1980년대에 미국은 추상표현주의가 저울고 뉴 아트라 불리는 혼성 양식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이 한창이었다. 거기서 그는 구상과 추상을 뛰어넘어 자신의 문화적 배경 을 탐색하고, 토론을 통해 작품의 당위성을 찾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었다. 작품을 구상하던 중 그는 길거리에 나뒹구는, 스피커를 발견하고, 매일 고속도로의 소음에 시달리는 자신처럼 불안과 신경증 가득한 현대인을 표현한 '사운드' 시리즈를 1984년부터 발표하였다. 사운드 시 리즈는 스피커 형태를 그리거나 스피커 오브제를 화면에 붙이고, 감정을 표현하듯이 강렬하고 빠른 붓질과 원색의 배치로 조화를 이룬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그는 자연과 인공의 소리, 탄식과 분의 소리, 때로는 침묵과 같은 작가가 처한 현실을 소리를 통해 작품에 표현하였다.
소리가 현실에 존재하는 불안의 상징이라면 소리에서 치환된 해골은 그의 내면에 오랫동안 존재해온 공포를 상징한다. 그는 1944년 해방 직전에 태어나 1950년 한국전쟁의 혼돈을 겪었고, 재건되는 한국 사회에서 유년과 청년시절을 보냈다. 그의 유년시절은 시대적 불안이 상존하 였지만 공의(公醫)였던 아버지를 둔 관계로 큰 물질적, 물리적 위협을 받지 않고 전쟁기간을 보냈다. 하지만 먼 포격소리와 함께 시대적 불안 을 느꼈고, 부상자와 환자들이 밤낮없이 드나들었던 병원에서 그는 죽음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음을 느끼며 자랐다. 더욱이 어린 시절 병약했던 그는 고등학교 때 결핵으로 휴학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1980년대 후반 소리에서 해골로 이어졌다. 해결되지 않는 개인적, 사회적 불안과 고통은 ’사고‘,’밤‘,’분노‘,’공포‘,’소름,’죽음‘과 같은 명제 아래 표현되었다. 1990년대 들어 해골 시리즈는 강렬한 색채의 대조와 배합, 두드러지는 선의 흐름을 보이면서 다양한 표현의 변주를 보인다. 주제 면에서 '동굴, 인간은 무엇이 되어 어디로 갈 것인가?'와 '기(氣)'와 같은 인간에 대한 성찰과 정신적 주제들도 나타났다.
1983 - 1997
: 소리, 해골 시리즈
- 1980년대 작품에서 선은 대상과 대상의 주변부의 이분된 구조에서 주변부에 속해 대상의 표현을 돕는 역할이었다면, 1990년대 이후 해골 시리즈에서는 대상을 포함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때에는 해골을 선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하였으며, 감정과 의식, 기(R)와 같은 동적, 순환적 흐름을 선으로 나타내였다. 1990년대 초에는 적황청흑백의 전통의 오방색으로 구성된 '하늘' 시리즈가 등장하는데,
'하늘'은 일정한 색채 안에서 비정형의 면으로 체계를 구성하였다. 그러한 면을 변화 있게 배치하여 기의 흐름과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때 흩어지거나 모이면서 움직임을 만드는 면처럼, 선 시리즈에서도 동적 붓질의 Stroke가 화면에 나타나 동적인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선 시리즈는 '도형; 원형질; '문자; '선' 등의 추상과 조형 원리처럼 보였지만, 점점 더 동적인 흐름을 강하게 나타냈 다. 이때 선은 ‘line’과는 다르게 Stroke'라는 행위의 측면을 보여주는데, 이는 내면의 주관적 힘과 물리적이면서 선험적인 몸의 감각을 드 러낸다. 후기의 선에서 작가는 자신의 유전적인 기질과 문화적 정체성을 인식하였고, 동양의 일필휘지와 같이 몸이 체득한 조형을 발현시키 려는 시도를 하였다.
한편 선은 추상적 표현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변용 가능한 조형 수단으로도 역할 하는데, 구상적인 작품에도 선이 자주 사용되었다. 2000년 대 들어 작가는 일상의 인물이나 동물, (M.T)와 같은 삶의 장면, 정물, 산수와 같은 구상적인 표현에 선을 썼다. 한편 서사적인 내용의 표현에 서 선은 사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실재를 감추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3년 이후 '지하철 시리즈'와 같은 현실의 서사를 표현한 작품에서 선은 실제 현실과 화면의 표현 사이의 완급을 조절하고, 사실에 대한 관자의 시선을 적당한 거리로 유지하는 장치가 되기도 했다.
1991 - 2002
: 하늘, 선 시리즈
-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은 초기 1980년대 유학시절의 작품에서부터 나타났다. 작품 전반에 나타난 불안과 공포의 배경에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도 있겠지만, 당시 한국의 군부 독재라는 정치적 현실이 해골 시리즈에서 억압적인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대구에서 일어난 '상인동 가스폭발사고'가 계기였다. 이 때 해골 작업은 설치로 표현되었는데, 석고로 뜬 해골을 땅에 묻었다가 발굴한다든지, 대지에 뒹구는 해골군을 설치하여 원혼을 표현하였다. 2000년대 들어 작가는 작품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담으면서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도했다. 2000년대 초에는 동대구역이나, 공항, 시내와 같은 사람들의 일상, 고독과 같은 소재를 그렸는데, 선으로 구상적 내용을 단순화 시키거나 추상화시켜 표현하였다.
그 즈음 발생한 2003년 2.18 대구지하철사건'은 지역사회는 물론 그를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한 사람의 방화와 지하철 운영자들의 실수 로 2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하였고, 이 사건으로 작가의 제자 또한 목숨을 잃게 되었다. 당시 그는 대구예총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유력 한 위치에서 사건 현장을 가까이에서 돌아볼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시민과 관료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인간의 고통과 분노가 폭발하는 현장 을 경험하였고, 갈등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고 아픔을 치유하고자 '지하철 시리즈'를 제작하였다. 2006년과 2007년 집 중적으로 제작된 대구 지하철 시리즈에서는 사람들의 분노와 저항, 그리고 각기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화면에 배치하여, 현실의 고통이 발화 되는 과정과 발화된 고통이 당사자들 사이에서 부딪치는 양상을 탐색하였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날것의 현장을 관조하기 위해 그는 조형적으로 종이죽과 같은 소재를 고안하였고, 분절된 선을 구상적 내용에 함께 배치하여 현실과의 거리를 유지하였다. 그는 이러한 관찰과 공감을 통해 지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위로를 전달하려 했다. 그리고 나아가 그의 관심은 '청년실업'과 '개인주의'와 같은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확장되어 갔다.
1995, 2003 - 2010
: 지하철, 사회 현실
- 2010년대에 들어 그는 닥으로 만든 입체적인 형식의 해골을 고안하였고, 입체 해골은 하나의 유닛에서 시작하여 입체와 설치작품의 규모와 형식에서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였다. 2010년 전후 그는 닥을 이용해 해골 형태를 떠내어 속이 빈 해골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였다. 속이 빈 입체 형식은 단단한 골격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해체적인 형식의 해골을 가져왔고, 이러한 형식은 '골고다, 생명의 탄생'과 같은 입체적인 평면 시리즈를 가능하게 했다. 또한 주제 면에서 해골시리즈는 초기 억압, 불안 등 현대인의 심리와 감정을 상징하는 단계에서 점점 더 인류의 운명과 삶과 죽음을 잇는 보편적 상징의 단계로 확장되었다. 이 시기 '골고다, '생명' 등의 종교적 암시와 '미래, '시간, '명상' 등 철학적 명제가 등장하였다. 거대한 해골 무지를 설치한 '미래를 통하는 문'이나 '원효' 등의 작품에서는 거스르지 못하는 시간을 주제로 과거와 현재가 이 어지는 인류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명상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는 자신의 작품의 근간은 자신을 포함한 같은 문화 속에서 말없이 공감해 온 선험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하였다. 어린 시절 본 풍경, 일상의 환경과 주위의 사람들과 같은 한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면서도 세대를 수평적, 수직적으로 관통하는 같은 문화권 안에서의 보편성을 말하였 다. 하지만 그의 경험은 제한된 문화권에 머무르지 않았다. 초기의 점이 경험에 의한 조형이었다면 후기의 선은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는 가 능성을 확장해 주었다. 또한 초기의 해골이 자신을 둘러싼 개인과 사회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색이었다면 후기의 해골은 인류 보편의 문제 로 확장되어갔다. 이렇게 그는 시대의 흐름 가운데 문화를 수용하면서 작품 세계를 이루었고, 개인에서 시작해 사회를 보듬고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행적을 보여주었다.
2010 - ing
: 해골 설치 등 매체의 다양화
